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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서용선(1951~ ) 작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신화’, ‘역사’, ‘도시’ 그리고 ‘자화상’, ‘풍경’이라는 주제 안에서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탐구와 함께 세계사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동시대적 삶의 조건과 그 의미에 대해서 성찰하는 작품을 강열한 텃치와 색채로 그려내고 있다.
먼저 자화상은 1995년 첫 해외 레지던시(Vermont Studio Center)에 참여하면서 주된 작업 영역으로 발전했다. 1980년대 청년기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매진해온 장년기까지 동시대의 시간을 거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매일의 삶을 반영한 그의 자화상은 풍화와 견딤의 연속을 그대로 드러내며 서용선의 변화하는 정체성을 인지하게 한다. 자화상 드로잉은 자기비판과 고백을 통해 미술가로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1980년대부터 우리 역사 속 인물과 동양신화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등장한다. 그는 역사 속 인물이나 우리 신화와 관련된 연구문헌을 분석하고 현장을 직접 찾아 과거의 사건에 감정을 이입시킨 후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다.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도시’와 그 도시 속 ‘군상’은 작가에게 가장 오랜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작가는 도시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관찰하며, 도시의 건축물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순간의 포착력과 섬세한 손놀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큰 틀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작품 속에 그려내는 시선은 변화가 있다. 8, 90년대에는 도시와 군상이 암울한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최근에는 활기찬 모습으로 변했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유독 붉은색이 많이 나타난다. 특히 이번 전시에 독특하게 빨강으로 표현된 눈이 들어간 자화상이 눈에 뛴다. 작가는 “빨강은 투명한 색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작가가 투명한 눈으로 바라본 이 시대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전시 <내 이름은 빨강>은 바로 작가가 빨간색 눈으로 바라본 이 시대 모습을 ‘삶과 도시’, ‘삶과 정치’, ‘삶과 자연’이라는 주제로 나눠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70여점의 작품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이 주제를 3부로 나눠서 진행되며, 3부는 오는 9월 15일부터 새 전시 공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먼저 이번 1부에서는 서용선 회화의 중요 공간인 도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8, 90년대 집중적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을 그렸다. 어린시절 한국 전쟁이 이후 폐허가 된 서울의 재건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던 작가는 8, 90년대 서울의 변화에 주목했다. 특히 사대문안과 그 변두리의 재건과 뉴 서울인 강남으로의 확장을 목격하면서 작가는 서울이 과거와 현재가 응축된 장소로서 인식했다. 1부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숙대 입구 07:00-09:00>(1991), <도시-차 안에서>(1989, 1991), <버스 속 사람들>(1992), <도심>(1997-2000) 등을 선보인다.
<빨간 눈의 자화상>(2009)으로 시작하는 2부는 그의 회화의 중요 주제인 역사와 현재를 다룬다. 그는 자화상이라는 장르를 통한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고, 인간을 사회적으로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정치와 역사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그는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계유정난 등의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배열과 배치를 통해서 정치와 역사가 야기한 갈등과 불신, 파괴와 폐허를 치유와 화해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2부에서는 그의 다양한 자화상 시리즈뿐만 아니라, <음모>(1988, 1990), <여자 • 분노>(1991), <사막의 밤-포로들>(2004), <철암>(2004), <낙화>(2006, 2007), <청령포 1, 2>(2007), <개사람 1>(2008), <폐허 1>(2018, 2019), <사가모어 힐>(2019), <'경'자바위>(2014) 등 작가의 주제별 회화 대표작들이 선보인다.
특히, 작가의 초기작인 <정치인>(1984)은 80년대 등장한 새로운 군사정부 아래서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직업인들의 모습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업이다. 21세기 새로운 정치의 출현과 더불어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방송인에서 정치인으로, 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정치인들의 출현 속에서 의미심장하다.
오는 9월 15일부터 새롭게 시작될 3부에서는 보편적 세계를 향한 작가의 의지와 예술과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줄 예정으로 8점의 풍경화와 3점의 인물화 그리고 나무 조각들을 통해 삶과 예술의 일치를 위한 작가의 탐구와 성찰을 드러낼 예정이다.
또한, 전시 기간에 특별강연(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과 작가와의 대화가 준비되어 있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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