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첫 장욱진 대규모 회고전 선보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기사입력 2023.09.22 00:00 조회수 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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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거꾸로 서 있는 집, 작품 한가운데 사람과 강아지가 둥둥 떠다니며, 나무 아래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구성과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격적인 구도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은 화폭에 그려진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강아지, 순박한 농민을 닮은 소,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까치는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듯 나무위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그림 속 동물들은 한없이 귀엽고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족이다. 어쩌면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행복한 가족을 극대화하는 매개체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은 마냥 동화적인 것만은 아니다. 동양적 철학을 아주 간결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비록 작은 화폭에 간결하게 그려내었지만 그 어느 화가의 대형 작품보다 큰 철학을 품고 있다.그래서인가 장욱진의 그림은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동화’같은 감정과 함께 ‘매우 철학적이다’는 감정이 공존한다.

 

 

가족, 1976, 캔버스에 유화 물감, 13 × 16.5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Family, 1976, oil on canvas, 13 × 16.5cm,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jpg
가족, 1976, 캔버스에 유화 물감, 13 × 16.5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지난 14일부터 ‘장욱진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장욱진張相鎭(1917-1990)은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이다. 그러나 앞서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깊이 있게 소개한 적이 있었으나, 김환기와 장욱진을 회고하는 전시는 기억에 없다. 참고로 김환기의 회고전은 현재 호암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덕소아틀리에,1968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임응식사진아카이브]
덕소아틀리에,1968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장욱진은 현재 알려진 작품들만 헤아려도 730여 점의 유화와 300여 점의 먹그림, 그리고 그는 매직펜 그림, 도자기 그림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나무와 까치, 해와 달, 집, 가족 등 몇 가지 제한된 모티프만을 평생에 걸쳐 그렸다. 그런 탓에 장욱진에게는 늘 “동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는 앵포르멜, 단색조 회화, 민중미술 등 거대 담론이 오가며 100호 이상의 대형 작품들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미술계에서도 상대적으로 소박한 까치나 가족이란 주제를 일관되게 그렸던 장욱진의 10호 미만 작품들은 “작고 예쁜 그림”으로 치부되며 온전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만약 이 그림이 대형 작품으로 그려졌다면 앞서 느낀 ‘동심 가득한 감정’과 ‘동양적 철학’을 오히려 강하게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약 60년간 꾸준하게 펼쳐 온 장욱진의 미술 활동을 총망라하여 소개하는 전시로 전시에는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여 점을 청년기(10~20대), 중장년기(30~50대), 노년기(60~70대)로 재구성하여,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던 ‘주제 의식’과 ‘조형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변모해 나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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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

 

 

 

장욱진은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했고, 그림 그리는 시간의 대부분을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 수공업 장인처럼 그렸다. 이렇듯 지속적이고 일관된 그의 창작 태도는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장욱진은 60여 년 화업 인생 동안 제한된 몇 가지 소재들을 반복해서 그렸다.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전시 제목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고 말한 장욱진의 화문집(畵文集) 『강가의 아틀리에』 서문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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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1층 1부와 4부에서는 초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연대별로 작품 세계를 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2층 2부에서는 장욱진 그림에서 반복되는 소재들을 ‘내용’과 ‘형식’으로 접근하여 장욱진 그림을 보다 쉽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2층 3부에서는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에 대해 면밀히 다루고 있다.

 

1부, 첫 번째 고백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에서는 그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으로 학생작품전에서 상을 탄 <공기놀이>(1938)와 문자를 추상화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반월·목半月·木>(1963), 뼈대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를 그린 <자화상>(1973) 등을 통해 초기 화풍의 형성과정을 볼 수 있다. 완숙한 장욱진 작품의 전형(典型)이 완성되기까지 장욱진만의 독창적인 한국적 모더니즘이 창출되는 여정을 따라갈 수 있다. 또한 장욱진 관련 아카이브들을 통해 ‘신사실파’ 이 외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단체들의 활동 이력과 전람회 출품 등 새롭게 밝혀진 장욱진의 초기 행적과 기존에 알려진 작품명의 오류를 바로잡은 연구 성과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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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두 번째 고백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이다. 이 공간에서는 장욱진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소재들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이 가운데 그의 분신 같은 존재인 ‘까치’, 그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인 ‘나무’,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를 상징하고 있는 존재 ‘해와 달’을 선정해 각각의 소재들이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 도상적 특징의 변모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처럼 이 공간에서는 장욱진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의 의미와 이들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의 ‘발상과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장욱진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이 최초로 전시되며, 그가 처음 그린 표지화 초안과 더불어 한국 전쟁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렸던 『국제신보』 「새울림」 (글 염상섭, 삽화 장욱진) 삽화 56점 전체가 최초로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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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는 세 번째 고백 <진眞.진眞.묘妙>이다. 이 공간에서는 장욱진이 남긴 불교적 주제의 회화들과 먹그림, 목판화 선집 등을 통해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들여다보고 있다. 장욱진과 불교와의 인연은 청년기부터 여러 일화가 언급되지만 실제로 불교 주제의 작품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장욱진은 경전의 종교적 도상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자기성찰을 통해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과 요소들을 강조하고 변용했다. 장욱진이 최초의 불교 주제 회화로 아내의 초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장욱진에게 ‘가족’이란 불교적 세계관이 투영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가족〉, 1955, 캔버스에 유화물감, 6.5x16.jpg
〈가족〉, 1955, 캔버스에 유화물감 / 평생 가족 이미지를 그린 장욱진 가족도의 전범(典範)이 되는 그림이자, 최초의 정식 가족도라는 측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림 한 가운데에는 작품 제작연도 1955와 장욱진의 서명(UCCHINCHANg)이 적혀있다. 화면 한가운데 자리한 집 안에는 4명의 가족이 앞을 내다보고 있으며, 집 좌우로는 나무가 있고, 두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다. 대상이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장욱진의 조형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의 가족도 중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이 함께 그려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도 의미 깊다. 또한 장욱진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작품의 액자 틀을 월북 조각가 박승구(1919~1995)가 조각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시에는 <진진묘>(1970)를 시작으로 해학성이 돋보이는 <심우도>(1979), <무제>(1979) 등과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최근 일본에서 발굴된 장욱진 최초의 가족 그림인 1955년작 <가족>이 최초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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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네 번째 고백 <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에서는 1970년대 이후 그의 노년기를 살펴보고 있다. 이 공간에서는 동양의 정신과 형태를 일체화시켜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했다고 평가받는 수묵채색화 같은 유화 및 특유의 비현실적 화면 구성 등이 정점을 이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973년 전후로 그의 작품에서는 1960년대까지 주를 이루던 강한 마티에르 대신 얇아진 색층이 등장하면서, 조형성이 강했던 졸박한 반추상에서 표현성을 가미한 담채풍의 담졸(淡拙)한 양식으로 변화가 본격화된다. <나무와 가족>(1982), <닭과 아이>(1990) 등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캔버스에 옮긴 듯한 말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장욱진 그림의 주요한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지속성’과 ‘일관성’을 꼽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이 둘이 무리 없이 일체體를 이루는 경우는 장욱진 외에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분명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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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장욱진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도상, 이미지를 관찰하고 관람객이 자신의 삶을 도상으로 표현하는 디지털 기반 참여형 워크숍 <나의 진지한 고백>(현장 및 온라인, 상시 참여)과 장욱진의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보는 워크숍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이 진행된다. 더불어 성인을 위한 작품 감상프로그램이 매일 3회차(12시, 14시, 16시) 진행된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내년 2월 12일(월)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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