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바람이 만드는 경치’, 세 작가(김민정, 도윤희, 정주영)의 시각과 시선으로 담아낸 ‘풍경(風景)’

갤러리현대, 작가의 과거 작품을 되돌아보는 새 프로젝트 ‘에디션 R’
기사입력 2024.03.16 00:00 조회수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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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에디션 R - 《풍경 (Incorporeal Landscape)》 전.jpg
[갤러리현대] 에디션 R - 《풍경 (Incorporeal Landscape)》 전

 

 

 

[서울문화인] 갤러리현대가 작가의 과거 작품을 되돌아보고(Revisit), 현재의 관점에서 미학적 성취를 재조명(Reevaluate)하여 작품의 생명을 과거에서 현재로 부활(Revive)시키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60년대 생 김민정(1962년생), 도윤희(1961년생), 정주영(1969년생) 세 작가가 ‘풍경(風景)’을 소재로 그려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자연이라는 대상과 우리가 맺는 관계를 심미적인 풍경으로 형상화한 김민정의 작품, 비가시적인 인식에서 시작하여 실체를 인식하는 도윤희의 내적인 풍경, 이미 선택되어 변용된 풍경을 다시 선택하고 변용함으로써 풍경이란 주제가 가지고 있는 개념에 도전하는 정주영의 풍경까지, 현실과 그 너머의 비가시적인 풍경까지 주제를 폭 넓게 아우르는 세 작가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주요 작품을 통해 세 작가가 20대에서 40대에 마주했던 각각 ‘풍경’을 소개하하는 전시이다.

 

전시는 김민정, 도윤희, 정주영 세 작가가 현실과 비가시적인 풍경까지 주제를 폭 넓게 아우르며 각각 그려낸 ‘풍경’을 통해 각자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감각할 수 있는지, 또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이 제각각 얼마나 다채로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지 마주할 수 있다.

 

 

김민정 작가   [제공=갤러리현대].jpg
      김민정 작가 [제공=갤러리현대]

 

 

“제가 생각하는 풍경이란, 내 마음과 머릿속을 완전히 비운 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가 내 마음과 눈에 투영되어 그 풍경과 내가 하나가 됐을 때를 의미합니다. 그럴 때 그 풍경이 나를 통해, 선이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작업으로 전유됩니다.” – 김민정, 2024

 

 

먹을 밀어내는 수채 물감과 한지와의 흥미로운 관계

김민정은 지난 30여 년 동안 동아시아 회화 예술의 유산인 지필묵(紙筆墨)의 전통을 서구 추상미술의 조형 어법과 결합하는 독창적인 작품을 발표해 왔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는 2018년 영국 런던의 화이트큐브, 2019년 독일 노이스의 랑겐 파운데이션, 2020년 미국 뉴욕의 힐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 오고 있다.

 

이번 《풍경》 전에서 소개되는 김민정의 작품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작가가 이탈리아에서 머물며 완성한 작업들이다. 1991년 이탈리아로 떠나 밀라노 브레라국립미술원에 입학한 그는 영상과 사진 작업이 주를 이루던 당시 학업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통해 익숙하게 다뤄온 한지를 재료로 삼고 있다.

 

김민정 작가는 1990년대 먹과 수채 물감의 관계, 얼룩과 번짐 효과를 극대화한 일련의 수묵 채색 추상 작품을 선보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작품의 일부를 불로 태워 동아시아 회화 예술의 관례를 폐기하는 과감한 변신을 준비하며 독창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 작품 세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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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Primavera, 1998, Ink and watercolor on mulberry Hanji paper, 67.5 x 62.6 cm [제공=갤러리현대]

 

 

김민정, Primavera, 1998, Ink and watercolor on mulberry Hanji paper, 67.5 x 62.jpg
김민정, Primavera, 1998, Ink and watercolor on mulberry Hanji paper, 67.5 x 62.6 cm [제공=갤러리현대]

 

 

특히 1990년대는 작가에게 다채로운 감각적 자극을 받아들이고 동양철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시기였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생각과 마음의 ‘비움’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불교적 관점의 풍경을 선보였다. 마음과 머리를 완전히 비운 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가 마음과 눈에 투영되어 나와 하나가 됐을 때의 상태가 비로소 작가가 보는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대지, 봄, 월식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의 제목 〈La terra〉, 〈Primavera〉, 〈Eclisse〉는 바로 작가가 자연 현상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화했음을 암시한다.

 

그의 작품에서 당시 작품의 주재료인 수채 물감의 안료 성분이 먹을 밀어내는 서양 양지와 재료가 표면 위에서 마르는 한지와 흥미로운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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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윤희 작가

 

 

“제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삶입니다. 작가의 주제는 작가의 원인이고, 페인팅은 내적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그림은 작가의 내면 현실의 반영이며, 전시는 타인의 시선에 저의 내면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 도윤희, 2024

 

문학적 언어를 캔버스에 그려내다.

도윤희는 지난 40여 년 동안 다양한 기법의 추상회화를 통해 시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 왔다. 2007년 스위스 갤러리바이엘러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최근 도윤희 작가의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에겐 이 작품이 도윤희 작가의 작품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컬러의 변화를 크게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은 1996년부터 2009년까지의 작업으로 작가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세포나 화석의 단면과 같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며 ‘Being’ 연작을 남겼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집중하던 당시, 시간성에 매료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은 흑연 드로잉 위에 바니시를 흑연과 반복적 레이어 작업 통해 독특한 질감과 깊이감이 돋보인다. 그가 구축한 화면은 겹겹이 자리한 나무숲의 단면, 수증기의 움직임, 부유하는 세포들 등 다양한 형상을 연상한다. 당시 작가는 세포 또는 화석의 단면을 관찰하고 발견한 이미지를 추상의 화면으로 승화했다.

 

 

도윤희, 천국과 지상의 두개의 침묵은 이어져 있다, 2004  02.jpg
도윤희, 천국과 지상의 두개의 침묵은 이어져 있다, 2004

 

 

도윤희, Being - Swamp, 1996, Oil and pencil with varnish on linen, 122 x 244 cm [제공=갤러리현대].jpg
도윤희, Being - Swamp, 1996, Oil and pencil with varnish on linen, 122 x 244 cm [제공=갤러리현대]

 

 

 

이 시기 도윤희는 문학적 언어와 시각적 언어 양쪽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며, 세상으로부터 포착한 아름다움을 일기로 쓰고, 작품의 제목으로 일부 문구를 차용했다고 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밤은 낮을 지운다〉(2007-2008), 〈천국과 지상의 두 개의 침묵은 이어져 있다〉(2004),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2008-2009)와 같은 작품의 제목은 바로 그의 글귀에서 인용되었다. 도윤희 작가는 삶에서 마주하는 현상과 물질 등 인간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시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의 당시 작업은 이 ‘시’를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후 2015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Night Blossom》에서 작가는 작품 제목을 모두 ‘무제’로 정하며 문학적 요소와 결별을 암시하고, 억제했던 색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도윤희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 작업은 세상, 현상, 사건 등 표면 뒤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여기서의 아름다움은 유행이나 예쁜 것(pretty)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은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속되어야 드러나는 것들, 나를 적중하는 것들, 진실과 같이 일상의 갱도에 흐르고 있는 것들이죠. 아름다움은 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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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 작가

 

 

“본다는 것은 개인의 감각적 경험을 넘어 집단의 기억, 회상을 통해 전통이나 원형의 문제를 수반한다고 봅니다. ‘봄’의 행위가 광학 장치와 비교되고 기억의 문제도 디지털 데이터화되는 지금의 환경에서, 여전히 본다는 것은 인간의 지각과 인식체계가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 정주영, 2024

 

김홍도와 정선이 그려낸 진경산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해석

정주영은 한국 미술계에서 ‘산의 작가’로 통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작가는 산의 풍경을 캔버스로 옮겨 그렸다. ‘산’은 서양회화에서는 풍경화, 동양회화에서는 산수화로 불리는 장르의 대표적인 공통 화제(畵題) 중 하나로, 정주영에게 풍경화는 회화의 방법론을 실험하는 장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 〈김홍도, 시중대 (부분)〉(1998), 〈김홍도, 가학정 (부분)〉(1996), 〈정선, 인왕제색 (부분)〉(1999)은 1995년에서 1997년 사이 작가가 암스테르담에서 유학하던 시기에 그려졌고, 일부는 그 직후인 1998년과 1999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제작된 작업이다.

 

 

정주영, 김홍도, 가학정(부분), 1996, Oil on linen, 200 x 400 cm   [제공=갤러리현대].jpg
정주영, 김홍도, 가학정(부분), 1996, Oil on linen, 200 x 400 cm [제공=갤러리현대].

 

 

정주영, 김홍도, 시중대(부분), 1998, Oil on linen, 200 x 400 cm   [제공=갤러리현대].jpg
정주영, 정선, 인왕제색(부분), 1999, Oil on linen, 200 x 360 cm [제공=갤러리현대]

 

 

이 작품들에서 정주영은 산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김홍도와 정선이 이상을 현실에 옮겨 놓은 그 회화적 공간의 작은 일부를 대형 캔버스에 확대해 그려내고 있다. 원본과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새로운 회화적 공간으로 구축하며, 진경과 실경, 관념과 실재, 추상과 구상 사이에 놓인 이중적인 ‘틈’ 회화의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관념과 추상을 넘어선 감각과 체험의 구체적이며 원초적인 차원으로 우리 인식의 뿌리를 잡아 이끄는 풍경의 초상”을 작업한다고 말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이 작품들은 작가가 ‘산’을 회화의 방법론으로 삼게 된 시작점에 있는 풍경들이라 할 수 있다.

 

‘회화에 대한 회화란 무엇일까?' 독일 유학 초기 회화를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했던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은 조선시대 문인 화가인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를 만나면서 “진경”이라는 개념에서 그 해답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진경산수는 그 자체로 풍경의 해석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산이라는 구체적 소재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김홍도와 정선의 산수화에 등장하는 산을 서양 회화의 풍경화에서 중요한 화재(畫材)로 재인식하게 된 순간이었다. 산과 바위의 형상은 동서양의 회화론에서 흔히 인체와 비견되곤 했기에 알프스 연작으로도 연결되었고, 최근에는 기상학 연작으로 확장되었다. 돌아보건대 풍경이라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향한 여정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이 작품들은 작가가 ‘산’을 회화의 방법론으로 삼게 된 시작점에 있는 풍경들이라 할 수 있다. 정주영 작가의 풍경에 대한 탐구는 결국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풍경에 대한 해석과 그것의 동시대적 의미를 살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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