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선정 의결

기사입력 2022.01.20 16:19 조회수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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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가을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서헌강] 01.jpg
양주 회암사지 가을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서헌강]

 

 

 

[서울문화인]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이 지난 13일 오후에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양주 회암사지를 새롭게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으로 선정할 것을 의결했다.

 

1964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양주 회암사지는 유산구역에는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등 보물 4건을 포함한 총 9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양주 회암사지는 지난 2018년과 2020년 잠정목록 선정 심의에서는 부결된 바 있으나, 이번 심의에서 문화재위원회는 유산의 성격, 명칭, 부도군과 사찰(유적) 구역 간의 연결성과 비교 연구 등에 대해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권고하면서 <잠정목록> 선정을 의결하였다.

 

<잠정목록> 선정은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기 위한 국내 심의 첫 단계로 이후 <우선등재목록>, <등재신청후보>를 거쳐 <등재신청대상>이 된다.

 

문화재청은 2022년 상반기 중 양주 회암사지를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정식 등록할 예정이다. 이는 20171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20191가야고분군을 확대 등록한 이후 약 3년 만의 잠정목록 등록이다.

 

올해 1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세계유산 잠정목록(‘22.1월 기준)에는 강진도요지(1994.9.1), 설악산 천연보호구역(1994.9.1), 남해안 일대 공룡화석지(2002.1.25.), 염전(2010.1.11), 중부내륙산성군(2010.1.11.), 우포늪(2011.1.11), 외암마을(2011.3.11), 낙안읍성(2011.3.11), 한양도성(2012.11.23),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2017.1.24), 가야고분군(2019.1.28.) 12건이 있다.

 

 

양주 회암사지 가을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서헌강] 02.jpg
양주 회암사지 가을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서헌강]

 

 

양주 회암사지 여름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서헌강] 03.jpg
양주 회암사지 여름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서헌강]

 


회암사는 현재 터만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창건 시기를 알려 주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발굴된 유물에 나타난 명문을 통해 늦어도 고려 중기 이전에는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기와, 자기(瓷器), 도기(陶器), 소조품(塑造品), 금속품, 석제품 등 다양하면서도 품질 또한 최고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막새류를 중심으로 많은 양이 출토되었는데, 제작 기법이 우수할 뿐 아니라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기와도 다수 출토되었다.

 

또한 궁궐이나 왕실 관련 사찰에서만 사용된 청기와를 비롯하여 궁궐 건축물의 지붕 추녀마루에 올리는 용두(龍頭)나 잡상(雜像), 최고급 도자기와 금속 공예품 등은 당시 회암사의 위상이 상당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회암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색(李穡)이 지은 천보산 회암사 수조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와 김수온(金守溫)이 찬한 회암사 중창기(檜巖寺重創記)에는 인도 출신의 원나라 승려 지공선사(指空禪師)13263월경 개경의 감로사(甘露寺)에 도착하여 13289월 돌아갈 때까지 통도사(通度寺)와 화장사(華藏寺) 등 전국의 여러 사찰을 순례하다가 회암사의 지형이 인도의 아란타사(阿蘭陀寺)와 같아 가람을 이룩하면 불법이 크게 흥할 것이라고 말하자 그 뒤에 제자인 나옹(懶翁) 등이 크게 중창하였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고려 말기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나옹은 선각왕사 혜근(禪覺王師 惠勤, 1320~1376)으로, 원나라에 가서 지공선사로부터 수학하여 법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나옹이 회암사의 전당(殿堂) 확장 공사를 끝냈을 때에는 262칸의 전각이 있었으며, 13764월 낙성 법회 개최 때에는 전국의 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대거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 말기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원증국사 보우(圓證國師 普愚, 1301~1382)도 제자인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1327~1405)와 함께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당시 회암사가 크게 발전하자 유생들은 백성들이 회암사에 가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국왕에게 주청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들어와 회암사는 더더욱 부각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물려주고 스승으로 삼았던 무학대사가 회암사에 머물 때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으며, 불심이 깊었던 효령대군(孝寧大君)은 전국의 여러 불사를 직접 관장하거나 후원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회암사 중창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2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게 하였다고 전하며, 문정왕후(文定王后)는 보우(普雨)로 하여금 회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케 하여 전국 제일의 사찰로 중흥을 꾀하기도 하였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사진제공=문화재청 서헌강] 02.jpg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사진제공=문화재청 서헌강]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보물 제2130)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불탑(佛塔)로 확인되고 있다. 이 사리탑은 팔각을 기본으로 다층의 기단부와 원구형 탑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의 각 면에 다양한 장엄이 새겨져 있는데 용과 기린, 초화문(草花紋), 당초문(唐草紋), 팔부신중이 하층기단 대석으로부터 상층기단 갑석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조식되어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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