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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영화의 한 장면과 명화의 구도를 차용한 듯한 연출, 사진작가 알렉스 프레거의 개인전
[갤러리] 영화의 한 장면과 명화의 구도를 차용한 듯한 연출, 사진작가 알렉스 프레거의 개인전
[서울문화인] 20세기 중반 미국 도시인들의 삶의 한 현장을 마주하는 듯한 레트로(retro)적인 분위기, 이는 마치 오랜 된 고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미장센 기법(Mise-en-Scène)이 동시에 공전하는 듯 시공간을 넘나드는 연출은 과거로 회귀한 듯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리만머핀 서울에서 지난 5월 9일부터 6월 22일까지 알렉스 프레거(Alex Prager, b.1979)의 개인전 《웨스턴 메카닉스 Western Mechanics》를 선보이고 있다. 알렉스 프레거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 2022년 롯데뮤지엄에서 대규모 기획전을 통해 국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미국적인 감성과 일상적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지만 과거 미국 영화를 많이 접하였던 사람들에게는 약간은 익숙하면서도 동양적 감성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알렉스 프레거(b.1979)는 대중문화와 영화산업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많은 영향을 받은 사진뿐 아니라 영화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정식으로 사진과 영상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2001년 장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에서 컬러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이자 미국의 평범한 풍경을 작품에 담고, 삶과 일상 속의 낭만을 포착한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1939-)의 전시를 보고 깊이 감동한 것이 사진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에 대한 독학을 시작했다. 프레거의 첫 사진 작업은 할리우드 영화배우였던 할머니의 친구로부터 어린 시절에 선물 받은 50~60년대 촬영용 의상과 가발 등이 들어있었던 상자를 열어 보고 받은 영감이 활용되었다. 1950년대를 연상시키는 가발을 쓴 여자들이 등장하는 작품은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이후 프레거의 작품의 대표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문화적 공동 기억을 활용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장면을 포착, 작가가 직접 하나하나 계획하여 연출한 등장인물, 20세기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의상, 헤어스타일과 포즈 그리고 도시 곳곳의 풍경들은 시간을 초월한 듯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작가는 화면 속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등장인물들을 배치해 시간을 뛰어넘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세상을 표현해 내고 있다. 프레거의 작품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연출은 또 다른 직업으로 이끌었다. 프레거는 영화를 ‘움직이는 사진’이자 ‘완전한 감각을 가진 사진’으로 정의, 영화 작업에 매진하여 2010년 단편영화 <절망 Despair>을 발표하는 것과 동시에 2011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을 위해 제작한 13부작 영화, <터치 오브 이블 Touch of Evil>(브래드 피트, 게리 올드먼 외 출연)이 2012년 미국 텔레비전 방송계의 최고상인 에미상(Emmy Award)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하게 영향력 있는 영화제작자로서도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번 전시 《웨스턴 메카닉스》는 작가의 첫 장편 영화인 <드림퀼 DreamQuil> 제작과 병행하여 기획된 전시로 양자 모두 유사한 주제를 탐구하는데, 특히 <드림퀼>에서 작가는 기술의 발전과 자연 질서의 와해를 이야기한다. 동명의 작품 <웨스턴 메카닉스>(2024)에서는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회화 <메두사호의 뗏목 The Raft of the Medusa>(1818-19)이나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1830)과 흡사한 여러 인체가 얽힌 역동적 구도를 묘사하며, 역사적 기억과 결합시켰다. 그러나 군상 뒤에는 미국적 풍물로 변용된 말과 산, 하늘이 놓여 있다. 프레거는 성조기, 지구본, 여성 속옷 등 일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사물을 구도 전반에 분산시킴으로써 친숙한 시각 언어에 극적인 장면을 주입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기하학적 구도 안에 뒤얽힌 인물들을 배치해 복잡한 화면 속에서 짜임새 있는 조직감을 도모했다. 이처럼 연출된 강렬하고 고요한, 동시에 낙관적인 무질서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에 내재된 모순을 가리킨다. 또한, 프레거의 거대 서사는 종종 추락하는 여성이나 멈춰진 순간 등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를 통해 나타난다. <할리우드(데이) Hollywood (Day)>(2024)에서 한 여성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는 고요함 속에 포착된 단 하나의 극적인 움직임이다. 그 특정하고도 긴박한 순간은 단편적이지만 머릿속에 오래 머무는 기억의 본질을 반영하며, 작품에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위와 같이 작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삽입한 정서적, 심리적, 물리적 서스펜스는 작업 전반에 내재하는 예측 불가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현실과 가공 사이를 탐색하는 프레거의 신작 사진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고, 관객을 끝없는 전이 상태에 놓이게 한다. 주의 깊게 연출된 그의 작품은 우리의 전이적 현실을 진솔하게 반영하고, 이는 다시 우리에게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선사한다. 프레거의 작품은 현재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2020년 현대카드 커미션으로 광장 외벽 및 천장에 설치된 <플레이 더 윈드 Play the Wind>(2019)는 2025년까지 대중에 공개된다. 또한, 작가는 최근 로스앤젤레스 공항철도 전동차 시스템에 활용될 단편 영화를 의뢰 받았고, 2025년 상영을 앞두고 있다. 6월 22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레트로토피아’을 통해 다시 ‘저엔트로피’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서울문화인] 예술을 하는 작가가 더 이상 물감을 구입하지 않고 물감을 소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작업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작가의 이번 프로젝트에 담긴 의미는 단순 붓을 놓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점의 확장인 원, 그리고 면, 선의 모더니즘적 기하학적 도형의 회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오고 있는 김용익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과 서울 한옥 공간에서 동시에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갤러리에서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세 번째 진행되는 개인전이지만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천착하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전시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그의 2016년부터 최근까지의 근작 46점(부산점 19점, 서울점 한옥 27점)을 다루고 있다. 김용익 작가(b. 1947)는 지난 2018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물감 소진 프로젝트(Exhausting Project)’라는 제목의 새 연작을 시작했다. 현재진행형인 이 연작은 지금 작가에게 남아있는 물감, 색연필 등 회구(繪具)들을 그의 여생에 걸쳐 모두 소진(消盡)하는 프로젝트이다. 남아있는 회구(繪具, 그림을 그리는 데 쓰는 물감, 붓 따위)를 색깔별로 골고루 소진하고자 화폭을 잘게 나누어 작업한 결과, 작품은 기하학적 도형의 모양을 띄며 김용익이 예술가로서 평생 추구해온 ‘저엔트로피(low entropy 에너지 낭비의 최소화)적인’ 삶의 방식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이전 작업을 ‘모더니즘 프로젝트’라 칭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궁극적인 추구는 ‘계몽주의로 각성된 인간의 이성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세계를 탐구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진보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는 꿈’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 그리고 기후 위기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실패를 예증하며 자신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를 살아오면서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의식주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자가용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이전의 작업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과 얇게 발린 물감 등 비교적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듯 보이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에도 과거의 조형적 특성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광활한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인 동양의 ‘주역’ 사상이 내제되어 있다. 종이 혹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들은 실제 『주역』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 괘(卦)의 형태를 차용하거나, 중국의 전통 우주론의 바탕이 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개념에서 빌려온 원과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 작업에도 도형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더니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작가의 철학을 대변할 수 없었는지 작가의 캔버스에는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묻어나는 글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주역’의 철학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담아내었다. 그래서 캔버스 위에 땅을 상징하는 네모와 하늘과 방위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원을 배열하여 음과 양의 균형과 조화를 드러낸다. “50년 이상 작업을 하다 보니 주체성,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이 싸여서 오히려 정보가 혼란스럽다” 이러한 변화는 오랫동안 그가 캔버스에 그려내었던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여러 방면에서 실패하였음을 간접적으로 그 대안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번 작업의 키워드를 ‘레트로토피아’(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라고 정의한다. 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그림자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주역’이라는 사상을 통해 마지막으로 띄우는 자유와 저항이자 비록 희망이 작가가 꿈꾸던 유토피아를 향한 마지막 그의 희망의 작업이다. 작가는 이를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행위’라 말한다. 더불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재료에 따라 작품 표면을 이루는 물감의 두께가 얇아 흐릿하거나 때로는 붓터치가 그대로 드러나 다소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이번 작품 가운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레이어 작품에 우연히 앉았다가 물감에 붙어 생명을 다한 모기 한 마리도 그의 작업의 일부가 되어 또 다른 레이어를 형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와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용익 작가는 “나의 삶과 예술이 같이 종말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작가는 자신의 논리에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예술을 한다는 것에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죽음에 대한 자유로워야 하는 제의(祭儀)작업이다.” 전시는 4월 2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갤러리] PKM 갤러리, 동시대 사진예술의 거장 토마스 루프의 최신작
[갤러리] PKM 갤러리, 동시대 사진예술의 거장 토마스 루프의 최신작
[서울문화인] “누가 보았을 때 이 사진은 이 작가의 사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2000년 이전까지는 아날로그식 사진을 찍었다. 이후 깨닫게 된 것은 사진도 기술적인 매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b. 1958)의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면 변화무쌍하다. 그는 사진의 기술과 개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에 도전하며, 국제무대에서 그만의 독보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라 할 수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이 이행하고, 사진이 현실을 포착할 뿐 아니라 비가시적인 세계를 보이게 하는 매체로 전환되는 시대를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잠재력과 한계를 가진 채 어떻게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키는지 탐색해 왔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사진에서 배포하는 사진으로’ 루프가 1970년대 후반부터 발표한 사진 시리즈는 고전적인 초상사진이다. 당시 사진에 대해 작가는 “당시는 찍으려고 하는 것을 조명, 의상 등 내가 모든 것을 통제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는 다큐스타일을 진행했다. 그러다 더 많은 사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 과학, 야간투시 등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이후 작가는 인터넷에 떠도는 데이터를 수집·편집한 이미지, 인공위성 또는 매스 미디어에서 전송받은 형상, 알고리즘으로 생성한 디지털 작업에 이르기까지 소재와 장르를 불문하고 25종류가 넘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40여 년 그의 작품세계는 20-21세기 현대 사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PKM 갤러리가 한국에서 20년 만에 선보이는 토마스 루프의 사진전 <d.o.pe.>는 작가가 카펫을 사진의 지지체로 처음 사용한 작업으로, 다채로운 프랙털(fractal) 패턴을 거대한(최장 290cm) 융단 위에서 황홀경처럼 펼쳐내었다. ‘프랙털’은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Mandelbrot, 1924-2010)가 1975년에 제시한 용어로 기본적인 형태요소가 커지거나 줄어들면서 반복적으로 증식되는 구조를 뜻하는 것으로 자연 및 인공의 세계 모두에서 발견되고 있다. 프랙털이미지는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루프는 2000년대 초반 프랙털 구조의 다차원적인 아름다움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했으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했고, 20년이 지난 시점인 2022년에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더불어 비로소 실현할 수 있었다. 사진예술이 테크놀로지와 불가분리한 관계임을 인정하는 그는 <d.o.pe.>에서 신기술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추출하고 이를 부드러운 직물 위에 심도 깊게 투사해냈다. 루프는 ‘d.o.pe.’라는 제목은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의 『지각의문』(The Doors of Perception, 1954)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 책은 인간이 화학적인 촉매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본 헉슬리의 자전 에세이로, 루프는 이번 작업에서 컴퓨테이션(computation)으로 산출한 이미지를 통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함으로써 이에 화답하였다. “내 작업은 사진과 회화의 중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선보이는 화면에는 잎사귀, 깃털, 조개껍질 등 주변의 익숙한 자연 형상으로 읽히는 동시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세한 세포, 광활한 우주의 예측 불가능한 현상을 연상하게 하며, ‘프랙털’의 사이키델릭한 가상공간으로 관람자를 빠져들게 한다. 이것이 사진인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그가 밝힌 망델브로의 수학과 헉슬리의 문학 사이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과 만들어진 실제의 모호한 경계에서 사진의 경지를 다시금 개척한 루프의 이번 신작은 인식의 문 너머, 시각적인 초월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 같다. [허중학 기자] 토마스 루프는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베른트 베허(Bernd Becher, 1931-2007)에게 사진을 사사한 후, 1980년대부터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1955-),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1944-) 등과 함께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주요멤버로서 세계 사진계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뉴욕현대미술관, 런던 국립초상화박물관, 뒤셀도르프 K20,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타이중 국립대만미술관 등의 저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런던 테이트 모던,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바젤현대미술관 등에서 그룹전을 개최하였고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의 대표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사진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워싱턴 D.C. 허쉬혼미술관, 파리 조르주 퐁피두센터 등을 포함한 전 세계 유수 미술기관에서 루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서용선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전
서용선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전
[서울문화인] 표정 없는 얼굴로 정면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하고 있지만 컬러감이 주는 색체에 마치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며 무언가를 얘기하려는 듯하다. 풍경, 역사, 신화, 자화상 등 폭 넓은 인문학적 주제를 회화로 풀어내는 서용선(1951~ ) 작가가 그의 다양한 작업 가운데에서 ‘자화상’만을 보여주는 전시를 인사동 포토하우스에서 선보이고 있다. 특히 작가는 사람-도시-역사라는 커다란 주제로 역사의 파편들을 다시 조립해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며 정치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기도 급성장하는 자본주의 도시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도시-역사는 서용선 작품 세계의 여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키워드라 말할 수 있다. 삶의 반영으로써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 “자화상은 실제로 그리는 순간 실패하는 그림이에요. 선을 긋는 순간부터 안 닮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은 절대 안 나와요. 그래서 화가로서 가장 비극적인 그림 중의 하나가 자화상인 거죠. 그런 점에서는 앞서 애기했던 시지프스 신화와 같은 점이 있어요. 실패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계속 그려나가는 거죠. 그래도 먼저 그린 그림과 다음에 그린 그림은 차이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뭔가가 담겨 나가는 느낌이 있어요.” (이영희, ‘화가 서용선과의 대화’ 중에서) 서용선 작가의 여러 주제 가운데 ‘자화상’을 빼놓을 수 없다. 작가는 미술대학에 합격하고 처음 그린 그림이 자화상이라고 한다. 1995년 첫 해외 레지던시(Vermont Studio Center)에 참여한 이후 주된 작업 영역으로 발전했으며, 1980년대 청년기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매진해온 장년기까지 동시대의 시간을 거친 모습이 기록하고 있다. 캔버스 앞에 당당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의 자화상은 점차 세상을 응시하고, 대면하고, 좌절하며, 받아들이며, 또한 흥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그 모습은 격렬하게 그리는 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이 해체되고 다시 결합되며 새롭게 탄생하였다. “자화상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갖고 있는 운명의 핵심이 자아이고, 이것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까… 인간 연구를 하는데 자화상은 기본 단위이다.”자신을 그림 그리는 노동자라 말하는 서용선은 이번 전시의 자화상은 변화하는 정체성이자 자기비판과 고백이 아닌가싶다. 이번 전시에는 1995년부터 2024년까지의 자화상을 그린 회화 작품 27점, C 프린트 8점, 입체 1점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는 오는 3월 17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한국의 장례문화와 발효문화에 영감을 받아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관찰
[전시] 한국의 장례문화와 발효문화에 영감을 받아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관찰
[서울문화인] 노란색으로 염색한 직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직물 사이로 들어서면 익숙한 옹기와 옹기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새끼줄, 천장에는 국화가 달려있고 내부의 바닥에는 짚들과 그리고 그 사이사이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전시장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에 새롭게 설치된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계 브라질인이자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댄 리(Dan Lie, b. 1988 / 과거 작가명: 다니엘 리 (Daniel Lie))의 <상실의 서른 여섯 달>이라는 작품이다. 댄 리는 박테리아, 곰팡이, 식물, 동물, 광물, 영혼 및 선조와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장소와 시간 특정적인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로 그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물성의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이것이 인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런 경험을 통해서 관객과 소통을 한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관람객에게 어떻게 느꼈는지를 여쭤본다고 한다. 한국 첫 개인전을 위해 방문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리서치를 하였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여 만난 짚풀공예 장인,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정관 스님, 전 국립민속박물관 이관호 과장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고 밝히면서 그는 그 가운데 특히 삼년상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한국의 삼년상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침 작가의 아버지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째(1,000일) 되는 날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더해지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댄 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은 부패와 발효, 즉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이는 것이다. 댄 리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살아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의 조합”이라고 설명한다. 삼베, 면포, 국화와 같은 한국 전통 장례문화에서 온 모티브들을 비롯하여 댄 리가 조성한 생태시스템에는 벌써 파릇하게 자라난 새싹 이외에도 버섯종자가 뿌려져 있다. 그리고 쌀과 누룩이 발효되고 있는 옹기들로 구성된 설치 작품은 전시가 계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형태가 바뀌며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이게 된다. 또한 부패와 발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곰팡이, 박테리아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은 이 순환과정을 촉진시키는 협업자로 활약을 하게 된다. 중정에 위치한 한옥 안에서도 댄 리의 또 다른 생태시스템이 펼쳐지고 있다. 부정을 막기 위하여 걸어 놓는 금줄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는 새끼줄, 국화 그리고 옹기를 사용하여 대들보에서 내려오는 설치작업이다. 이 작품 또한 점점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작품은 열린 해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 유일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전시가 끝나는 5월 도시의 건축물 안이라는 환경에 어떤 생명이 태어나고 또 어떻게 소멸하는지 그 모습이 어떨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댄 리의 변화하는 작품들은 5월 12일까지 진행되며, 3월 7일까지는 무료로 만나볼 수 있고 이후는 유료 관람으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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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영화의 한 장면과 명화의 구도를 차용한 듯한 연출, 사진작가 알렉스 프레거의 개인전
[갤러리] 영화의 한 장면과 명화의 구도를 차용한 듯한 연출, 사진작가 알렉스 프레거의 개인전
[서울문화인] 20세기 중반 미국 도시인들의 삶의 한 현장을 마주하는 듯한 레트로(retro)적인 분위기, 이는 마치 오랜 된 고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미장센 기법(Mise-en-Scène)이 동시에 공전하는 듯 시공간을 넘나드는 연출은 과거로 회귀한 듯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리만머핀 서울에서 지난 5월 9일부터 6월 22일까지 알렉스 프레거(Alex Prager, b.1979)의 개인전 《웨스턴 메카닉스 Western Mechanics》를 선보이고 있다. 알렉스 프레거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 2022년 롯데뮤지엄에서 대규모 기획전을 통해 국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미국적인 감성과 일상적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지만 과거 미국 영화를 많이 접하였던 사람들에게는 약간은 익숙하면서도 동양적 감성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알렉스 프레거(b.1979)는 대중문화와 영화산업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많은 영향을 받은 사진뿐 아니라 영화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정식으로 사진과 영상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2001년 장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에서 컬러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이자 미국의 평범한 풍경을 작품에 담고, 삶과 일상 속의 낭만을 포착한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1939-)의 전시를 보고 깊이 감동한 것이 사진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에 대한 독학을 시작했다. 프레거의 첫 사진 작업은 할리우드 영화배우였던 할머니의 친구로부터 어린 시절에 선물 받은 50~60년대 촬영용 의상과 가발 등이 들어있었던 상자를 열어 보고 받은 영감이 활용되었다. 1950년대를 연상시키는 가발을 쓴 여자들이 등장하는 작품은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이후 프레거의 작품의 대표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문화적 공동 기억을 활용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장면을 포착, 작가가 직접 하나하나 계획하여 연출한 등장인물, 20세기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의상, 헤어스타일과 포즈 그리고 도시 곳곳의 풍경들은 시간을 초월한 듯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작가는 화면 속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등장인물들을 배치해 시간을 뛰어넘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세상을 표현해 내고 있다. 프레거의 작품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연출은 또 다른 직업으로 이끌었다. 프레거는 영화를 ‘움직이는 사진’이자 ‘완전한 감각을 가진 사진’으로 정의, 영화 작업에 매진하여 2010년 단편영화 <절망 Despair>을 발표하는 것과 동시에 2011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을 위해 제작한 13부작 영화, <터치 오브 이블 Touch of Evil>(브래드 피트, 게리 올드먼 외 출연)이 2012년 미국 텔레비전 방송계의 최고상인 에미상(Emmy Award)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하게 영향력 있는 영화제작자로서도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번 전시 《웨스턴 메카닉스》는 작가의 첫 장편 영화인 <드림퀼 DreamQuil> 제작과 병행하여 기획된 전시로 양자 모두 유사한 주제를 탐구하는데, 특히 <드림퀼>에서 작가는 기술의 발전과 자연 질서의 와해를 이야기한다. 동명의 작품 <웨스턴 메카닉스>(2024)에서는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회화 <메두사호의 뗏목 The Raft of the Medusa>(1818-19)이나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1830)과 흡사한 여러 인체가 얽힌 역동적 구도를 묘사하며, 역사적 기억과 결합시켰다. 그러나 군상 뒤에는 미국적 풍물로 변용된 말과 산, 하늘이 놓여 있다. 프레거는 성조기, 지구본, 여성 속옷 등 일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사물을 구도 전반에 분산시킴으로써 친숙한 시각 언어에 극적인 장면을 주입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기하학적 구도 안에 뒤얽힌 인물들을 배치해 복잡한 화면 속에서 짜임새 있는 조직감을 도모했다. 이처럼 연출된 강렬하고 고요한, 동시에 낙관적인 무질서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에 내재된 모순을 가리킨다. 또한, 프레거의 거대 서사는 종종 추락하는 여성이나 멈춰진 순간 등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를 통해 나타난다. <할리우드(데이) Hollywood (Day)>(2024)에서 한 여성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는 고요함 속에 포착된 단 하나의 극적인 움직임이다. 그 특정하고도 긴박한 순간은 단편적이지만 머릿속에 오래 머무는 기억의 본질을 반영하며, 작품에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위와 같이 작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삽입한 정서적, 심리적, 물리적 서스펜스는 작업 전반에 내재하는 예측 불가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현실과 가공 사이를 탐색하는 프레거의 신작 사진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고, 관객을 끝없는 전이 상태에 놓이게 한다. 주의 깊게 연출된 그의 작품은 우리의 전이적 현실을 진솔하게 반영하고, 이는 다시 우리에게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선사한다. 프레거의 작품은 현재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2020년 현대카드 커미션으로 광장 외벽 및 천장에 설치된 <플레이 더 윈드 Play the Wind>(2019)는 2025년까지 대중에 공개된다. 또한, 작가는 최근 로스앤젤레스 공항철도 전동차 시스템에 활용될 단편 영화를 의뢰 받았고, 2025년 상영을 앞두고 있다. 6월 22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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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레트로토피아’을 통해 다시 ‘저엔트로피’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서울문화인] 예술을 하는 작가가 더 이상 물감을 구입하지 않고 물감을 소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작업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작가의 이번 프로젝트에 담긴 의미는 단순 붓을 놓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점의 확장인 원, 그리고 면, 선의 모더니즘적 기하학적 도형의 회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오고 있는 김용익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과 서울 한옥 공간에서 동시에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갤러리에서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세 번째 진행되는 개인전이지만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천착하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전시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그의 2016년부터 최근까지의 근작 46점(부산점 19점, 서울점 한옥 27점)을 다루고 있다. 김용익 작가(b. 1947)는 지난 2018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물감 소진 프로젝트(Exhausting Project)’라는 제목의 새 연작을 시작했다. 현재진행형인 이 연작은 지금 작가에게 남아있는 물감, 색연필 등 회구(繪具)들을 그의 여생에 걸쳐 모두 소진(消盡)하는 프로젝트이다. 남아있는 회구(繪具, 그림을 그리는 데 쓰는 물감, 붓 따위)를 색깔별로 골고루 소진하고자 화폭을 잘게 나누어 작업한 결과, 작품은 기하학적 도형의 모양을 띄며 김용익이 예술가로서 평생 추구해온 ‘저엔트로피(low entropy 에너지 낭비의 최소화)적인’ 삶의 방식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이전 작업을 ‘모더니즘 프로젝트’라 칭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궁극적인 추구는 ‘계몽주의로 각성된 인간의 이성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세계를 탐구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진보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는 꿈’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 그리고 기후 위기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실패를 예증하며 자신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를 살아오면서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의식주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자가용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이전의 작업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과 얇게 발린 물감 등 비교적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듯 보이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에도 과거의 조형적 특성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광활한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인 동양의 ‘주역’ 사상이 내제되어 있다. 종이 혹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들은 실제 『주역』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 괘(卦)의 형태를 차용하거나, 중국의 전통 우주론의 바탕이 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개념에서 빌려온 원과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 작업에도 도형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더니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작가의 철학을 대변할 수 없었는지 작가의 캔버스에는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묻어나는 글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주역’의 철학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담아내었다. 그래서 캔버스 위에 땅을 상징하는 네모와 하늘과 방위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원을 배열하여 음과 양의 균형과 조화를 드러낸다. “50년 이상 작업을 하다 보니 주체성,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이 싸여서 오히려 정보가 혼란스럽다” 이러한 변화는 오랫동안 그가 캔버스에 그려내었던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여러 방면에서 실패하였음을 간접적으로 그 대안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번 작업의 키워드를 ‘레트로토피아’(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라고 정의한다. 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그림자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주역’이라는 사상을 통해 마지막으로 띄우는 자유와 저항이자 비록 희망이 작가가 꿈꾸던 유토피아를 향한 마지막 그의 희망의 작업이다. 작가는 이를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행위’라 말한다. 더불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재료에 따라 작품 표면을 이루는 물감의 두께가 얇아 흐릿하거나 때로는 붓터치가 그대로 드러나 다소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이번 작품 가운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레이어 작품에 우연히 앉았다가 물감에 붙어 생명을 다한 모기 한 마리도 그의 작업의 일부가 되어 또 다른 레이어를 형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와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용익 작가는 “나의 삶과 예술이 같이 종말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작가는 자신의 논리에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예술을 한다는 것에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죽음에 대한 자유로워야 하는 제의(祭儀)작업이다.” 전시는 4월 2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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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PKM 갤러리, 동시대 사진예술의 거장 토마스 루프의 최신작
[갤러리] PKM 갤러리, 동시대 사진예술의 거장 토마스 루프의 최신작
[서울문화인] “누가 보았을 때 이 사진은 이 작가의 사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2000년 이전까지는 아날로그식 사진을 찍었다. 이후 깨닫게 된 것은 사진도 기술적인 매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b. 1958)의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면 변화무쌍하다. 그는 사진의 기술과 개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에 도전하며, 국제무대에서 그만의 독보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라 할 수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이 이행하고, 사진이 현실을 포착할 뿐 아니라 비가시적인 세계를 보이게 하는 매체로 전환되는 시대를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잠재력과 한계를 가진 채 어떻게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키는지 탐색해 왔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사진에서 배포하는 사진으로’ 루프가 1970년대 후반부터 발표한 사진 시리즈는 고전적인 초상사진이다. 당시 사진에 대해 작가는 “당시는 찍으려고 하는 것을 조명, 의상 등 내가 모든 것을 통제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는 다큐스타일을 진행했다. 그러다 더 많은 사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 과학, 야간투시 등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이후 작가는 인터넷에 떠도는 데이터를 수집·편집한 이미지, 인공위성 또는 매스 미디어에서 전송받은 형상, 알고리즘으로 생성한 디지털 작업에 이르기까지 소재와 장르를 불문하고 25종류가 넘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40여 년 그의 작품세계는 20-21세기 현대 사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PKM 갤러리가 한국에서 20년 만에 선보이는 토마스 루프의 사진전 <d.o.pe.>는 작가가 카펫을 사진의 지지체로 처음 사용한 작업으로, 다채로운 프랙털(fractal) 패턴을 거대한(최장 290cm) 융단 위에서 황홀경처럼 펼쳐내었다. ‘프랙털’은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Mandelbrot, 1924-2010)가 1975년에 제시한 용어로 기본적인 형태요소가 커지거나 줄어들면서 반복적으로 증식되는 구조를 뜻하는 것으로 자연 및 인공의 세계 모두에서 발견되고 있다. 프랙털이미지는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루프는 2000년대 초반 프랙털 구조의 다차원적인 아름다움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했으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했고, 20년이 지난 시점인 2022년에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더불어 비로소 실현할 수 있었다. 사진예술이 테크놀로지와 불가분리한 관계임을 인정하는 그는 <d.o.pe.>에서 신기술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추출하고 이를 부드러운 직물 위에 심도 깊게 투사해냈다. 루프는 ‘d.o.pe.’라는 제목은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의 『지각의문』(The Doors of Perception, 1954)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 책은 인간이 화학적인 촉매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본 헉슬리의 자전 에세이로, 루프는 이번 작업에서 컴퓨테이션(computation)으로 산출한 이미지를 통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함으로써 이에 화답하였다. “내 작업은 사진과 회화의 중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선보이는 화면에는 잎사귀, 깃털, 조개껍질 등 주변의 익숙한 자연 형상으로 읽히는 동시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세한 세포, 광활한 우주의 예측 불가능한 현상을 연상하게 하며, ‘프랙털’의 사이키델릭한 가상공간으로 관람자를 빠져들게 한다. 이것이 사진인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그가 밝힌 망델브로의 수학과 헉슬리의 문학 사이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과 만들어진 실제의 모호한 경계에서 사진의 경지를 다시금 개척한 루프의 이번 신작은 인식의 문 너머, 시각적인 초월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 같다. [허중학 기자] 토마스 루프는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베른트 베허(Bernd Becher, 1931-2007)에게 사진을 사사한 후, 1980년대부터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1955-),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1944-) 등과 함께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주요멤버로서 세계 사진계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뉴욕현대미술관, 런던 국립초상화박물관, 뒤셀도르프 K20,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타이중 국립대만미술관 등의 저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런던 테이트 모던,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바젤현대미술관 등에서 그룹전을 개최하였고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의 대표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사진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워싱턴 D.C. 허쉬혼미술관, 파리 조르주 퐁피두센터 등을 포함한 전 세계 유수 미술기관에서 루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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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전
서용선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전
[서울문화인] 표정 없는 얼굴로 정면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하고 있지만 컬러감이 주는 색체에 마치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며 무언가를 얘기하려는 듯하다. 풍경, 역사, 신화, 자화상 등 폭 넓은 인문학적 주제를 회화로 풀어내는 서용선(1951~ ) 작가가 그의 다양한 작업 가운데에서 ‘자화상’만을 보여주는 전시를 인사동 포토하우스에서 선보이고 있다. 특히 작가는 사람-도시-역사라는 커다란 주제로 역사의 파편들을 다시 조립해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며 정치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기도 급성장하는 자본주의 도시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도시-역사는 서용선 작품 세계의 여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키워드라 말할 수 있다. 삶의 반영으로써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 드로잉’ “자화상은 실제로 그리는 순간 실패하는 그림이에요. 선을 긋는 순간부터 안 닮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은 절대 안 나와요. 그래서 화가로서 가장 비극적인 그림 중의 하나가 자화상인 거죠. 그런 점에서는 앞서 애기했던 시지프스 신화와 같은 점이 있어요. 실패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계속 그려나가는 거죠. 그래도 먼저 그린 그림과 다음에 그린 그림은 차이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뭔가가 담겨 나가는 느낌이 있어요.” (이영희, ‘화가 서용선과의 대화’ 중에서) 서용선 작가의 여러 주제 가운데 ‘자화상’을 빼놓을 수 없다. 작가는 미술대학에 합격하고 처음 그린 그림이 자화상이라고 한다. 1995년 첫 해외 레지던시(Vermont Studio Center)에 참여한 이후 주된 작업 영역으로 발전했으며, 1980년대 청년기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매진해온 장년기까지 동시대의 시간을 거친 모습이 기록하고 있다. 캔버스 앞에 당당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의 자화상은 점차 세상을 응시하고, 대면하고, 좌절하며, 받아들이며, 또한 흥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그 모습은 격렬하게 그리는 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이 해체되고 다시 결합되며 새롭게 탄생하였다. “자화상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갖고 있는 운명의 핵심이 자아이고, 이것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까… 인간 연구를 하는데 자화상은 기본 단위이다.”자신을 그림 그리는 노동자라 말하는 서용선은 이번 전시의 자화상은 변화하는 정체성이자 자기비판과 고백이 아닌가싶다. 이번 전시에는 1995년부터 2024년까지의 자화상을 그린 회화 작품 27점, C 프린트 8점, 입체 1점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는 오는 3월 17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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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한국의 장례문화와 발효문화에 영감을 받아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관찰
[전시] 한국의 장례문화와 발효문화에 영감을 받아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관찰
[서울문화인] 노란색으로 염색한 직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직물 사이로 들어서면 익숙한 옹기와 옹기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새끼줄, 천장에는 국화가 달려있고 내부의 바닥에는 짚들과 그리고 그 사이사이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전시장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에 새롭게 설치된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계 브라질인이자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댄 리(Dan Lie, b. 1988 / 과거 작가명: 다니엘 리 (Daniel Lie))의 <상실의 서른 여섯 달>이라는 작품이다. 댄 리는 박테리아, 곰팡이, 식물, 동물, 광물, 영혼 및 선조와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장소와 시간 특정적인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로 그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물성의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이것이 인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런 경험을 통해서 관객과 소통을 한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관람객에게 어떻게 느꼈는지를 여쭤본다고 한다. 한국 첫 개인전을 위해 방문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리서치를 하였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여 만난 짚풀공예 장인,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정관 스님, 전 국립민속박물관 이관호 과장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고 밝히면서 그는 그 가운데 특히 삼년상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한국의 삼년상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침 작가의 아버지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째(1,000일) 되는 날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더해지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댄 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은 부패와 발효, 즉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이는 것이다. 댄 리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살아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의 조합”이라고 설명한다. 삼베, 면포, 국화와 같은 한국 전통 장례문화에서 온 모티브들을 비롯하여 댄 리가 조성한 생태시스템에는 벌써 파릇하게 자라난 새싹 이외에도 버섯종자가 뿌려져 있다. 그리고 쌀과 누룩이 발효되고 있는 옹기들로 구성된 설치 작품은 전시가 계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형태가 바뀌며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이게 된다. 또한 부패와 발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곰팡이, 박테리아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은 이 순환과정을 촉진시키는 협업자로 활약을 하게 된다. 중정에 위치한 한옥 안에서도 댄 리의 또 다른 생태시스템이 펼쳐지고 있다. 부정을 막기 위하여 걸어 놓는 금줄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는 새끼줄, 국화 그리고 옹기를 사용하여 대들보에서 내려오는 설치작업이다. 이 작품 또한 점점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작품은 열린 해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 유일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전시가 끝나는 5월 도시의 건축물 안이라는 환경에 어떤 생명이 태어나고 또 어떻게 소멸하는지 그 모습이 어떨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댄 리의 변화하는 작품들은 5월 12일까지 진행되며, 3월 7일까지는 무료로 만나볼 수 있고 이후는 유료 관람으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